홍지호 - 중보

사무엘럽 2020. 11. 26. 09:11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홍지호 시집, 문학동네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거의 기도를 하고 계셨다

 나는 그게 무섭기도 고맙기도 슬프기도 했던 시절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는 기도할 때 거의 울고 있었다

 그게 무섭기도 고맙기도 슬프기도

 

 강아지가 기도 시간에 엄마를 방해하지 않았다

 엎드려 있었다 우리는 친구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친구였기 때문에

 친구가 떠나던 날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만날 수 없는 것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친구이기 때문에

 기도를 배웠다

 기도는

 

 친구이기 때문에

 무섭기도 고맙기도 슬프기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엄마는

 고맙다고 할 때 슬펐던 것 같다

 기도가 사람을 울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는

 슬펐던 거 같다

 

 엄마가 무언가에게 고맙다고 기도할 때

 만날 수 없는 친구와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우리는 친구였기 때문에

 방해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엄마는 고맙다고 할 때

 

 친구와 나는 엄마 기도 덕분이야 생각했다

 엄마는 엄마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았던 거 같다

 

 엄마는 많이 아팠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