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호 - 거목

사무엘럽 2020. 11. 26. 08:58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홍지호 시집, 문학동네

 

 

 할머니는 기도하셨다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다 큰 나무 앞에서

 

 지나치게 큰 나무들은 주로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쳐먹고 저렇게 커졌을까 끈질기기도 하다

 중얼거렸다 마음속으로

 

 할머니와 나는 마음속으로 그랬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기도할 때 할머니 할머니

 부르지 못했다 어린 나에게도 기도가

 간절해 보였기 때문에

 

 자라면서 할머니 할머니

 부르는 것이 어려워졌다 간절해 보였기 때문에

 할머니

 보고 싶은 할머니

 

 어릴 적 미워하던 큰 나무 앞에서 할머니

 불러보았다 혼자 있는 거 같았지만

 

 큰 나무에는 벌레가 많았고 기어다니는 것들이 많았다

 살고 있는 것이 많았다

 유독 그늘이 큰 나무였다

 

 나무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라는데

 할머니

 

 나무가 크니까 낙엽이 더 많이 떨어진다고

 낙엽을 치우는 사람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