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 - 옛날 애인

사무엘럽 2020. 11. 9. 19:54

 

어떻게든 이별:류근 시집, 문학과지성사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사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류근 산문집, 해냄출판사

 

 

 이젠 서로 팔짱을 낄 일도 없고

 술 먹다 눈 마주치면 그 눈빛 못 견뎌서

 벽이나 모텔로 벌겋게 숨어들 일도 없고

 심야택시 잡을 일도 없고

 친구 생일 따위에 따라가 고깔모자 쓸 일도 없고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기다릴 일도 없고

 괜히 등산복 사 입고 산에 갈 일 없고

 벅찬 오페라에 돈 쓸 일 없고

 웃어줄 일 없고

 편지 쓸 일 없고

 꽃 이름 나무 이름 산 이름 골목 이름 하물며

 당신 초등학교 단짝 이름 암기할 필요 없고

 슬프고 아픈 척할 일 없고

 군대 태권도 1단증 갖고 강한 척할 일 없고

 미래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 없고

 사랑한다 거듭 고백할 필요 없고 

 없으나

 우리가 살아서 서로의 옛날이 되고

 옛날의 사람이 되어서 결국 옛날 애인이 될 것을

 그날 하루 전에만 알았던들

 

 아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