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운 - 가을이 오고 있었고
가을이 왔네
가을이 왔지
두 사람은 가을이 왔다고 말한다
마침 너도 와서
가을이 왔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작년에는 가을에 대한 시를 쓰려고 했는데
쓰지 못한 채 가을이 왔어
가을은 쓰지 못한 가을이면서도 다시 돌아왔지
그렇게 올 수 있었다고
나란히 두 사람 옆에 서서
너는 가을이 텅 빈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이걸로 시를 쓰자
정말로 가을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으니
텅 비어서 가을이 되어버린 것 같으니......
하지만 이미 누군가 했던 표현 같아서
너는 더 이상 가을이 텅 비었다고 생각하지도 텅 빈 다른 것들을 떠올려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가을은 왔지
가을에 대하여 그래도 너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텅 빈 것이 아닌 가을에 대하여
너는 어떤 모습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해보다가 마침
두 사람에게는 물어볼 수 있었지
가을은?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두 사람은 웃으며,
휘파람
귀뚜라미
해일 그리고 빛
고궁과 칼
방목장과 노을......
묘약
농담과 뺨
찌르레기
베란다, 비누와 천사
누룩
오렌지와 일기장......
두 사람은 웃었는데
나열하는 것들은 점점 가을과 멀어지는군요
가을이 아니라도 좋을 것들이군요
서로 말하고 말하는 걸로 연상하다가 너를 바라봤지
너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어
그것들로 시를 생각해내려 하면서
이윽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떠나간다고, 안녕
떠나가며 남은 가을을 잘 보내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가을이 되었고
지금 너는 그리고 남은 한 사람과 서 있었다
곧 올 사람을 기다리면서
너는 가을이 오다가 말았다고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은 가을은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말하고 웃고
오지 않은 것들과 사라져버린 것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로 쓸 수 있었나
너는 쓸 수는 없었고
그런 건 말할 수 없는 가을이다
언제든 사라지고 없는 가을에 대한 가을이다
지나간 가을에 대한 미래의 가을이다
그렇게 가을에 대하여 미래의 너도 쓸 수는 없을 것 같고
다시 가을은 왔지
미래도 오고 있었고
미래의 가을에
나는 너와,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을 어쩌면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와,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을 두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
나는 텅 빈 나를 두 사람이라고 생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