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운 - 그 편지를
내 편지를 왜 보내지 않아요. 나는 받지 못할 편지에 내내 답장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쓰지 않을 편지를 쓰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합니다. 나는 편지에 매여 있어요. 편지가 오지 않는 동안에 나는 미래의 편지를 써야 할 것이라며 편지에 붙들려 있어요. 그렇게 나는 어떻게든 쓸 수가 있었습니다. 어제에 대하여 오늘, 오늘에 대하여 어느 미래에도.
어제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책을 떠났다가 산책이 끝 모를 것처럼 이어졌으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은 몇십 년이 걸리는 산책을 마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후 4시 즈음, 빛은 사선으로 들어와 의자의 긴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림자에 앉아 의자의 일부가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림자로 끝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건 누가 말했던 걸까. 도대체 누가 내게 말한 건가요. 기억할 수 없어요. 기억할 수 없다고 지금 쓰고 있습니다. 다만 나는 계속 그림자가 생각났습니다, 그림자가...... 하지만 아니요. 이내 잊었어요. 그게 뭐라고, 찾지 못할 편지에만 존재하는 그림자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나는 미래에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죠. 밤에 좁은 길목을 걷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쳐다보면서 걷고 걷다가 나는 내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한가요, 아니면 당연한 건지 그걸 바닥의 그림자를 통해서 눈치챘어요. 그래서 나는 걸음을 늦추고 한 걸음 옆으로 비켜줬습니다. 그림자가 앞질러 가도록. 나는 바닥만 쳐다보면서 걷고 있었으므로 별다른 걸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요, 그림자만 봤습니다. 그러므로 앞질러 가는 게 무언지 몰랐지만 만약 사람이라면 부디 눈을 감고 걷는 사람이길 바랐습니다. 눈을 감고 걸으며 눈앞으로 떠내려가기를. 왜인가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그 생각을 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편지에는 그렇게 적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나는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려고 했어요. 나는 상황에 처하는 걸 좋아합니다. 상황이 나를 어떻게든 이끌어가도록. 그렇게 어떻게든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변모해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직면하면서 갱신해나가길. 나는 카페에서 편지의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편지의 상황은 이상해요, 편지의 말은요. 그래서 빠져들 것 같았죠. 읽기만 해도 내가 쓰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언젠가 편지를 받은 적 있고 답장을 해야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과 잘 아나요. 아니면 모르는 사이가 되나요. 거리감이 있어서 편지를 쓸 수 있는 것 같나요. 아니면 실감이 있어서. 나는 나를 실험하고 있었어요, 카페에서. 실험하면서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앉아 있었고 음악은 흐르고 있었고 무언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이라면 발생하게 해야 했습니다. 장면들 속에서 장면을, 그 장면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장면을, 그 장면이 강이 될 때까지.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보여줄 수는 없었습니다. 불현듯 강이 되고 그 강은 이미 검은 강이 되어버렸으니.
나는 언젠가 카페를 빠져나옵니다. 카페에서 빠져나와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편지를 떠올리며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편지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나는 걸어갈 겁니다. 집으로 걸어갔나요.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걸아갔을 테고 어떻게든 미래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을 거예요. 과거에도요. 그리고 나는 이 편지를 부칠 겁니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도. 전부 찢어버릴지도. 나는 이미 보낸 편지를 전부 개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