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운 - 풍등

사무엘럽 2020. 11. 24. 01:31

 

산책하는 사람에게:안태운 시집, 문학과지성사, 9788932037974, 안태운 저 감은 눈이 내 얼굴을:안태운 시집, 민음사

 

 

 안쓰럽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 안으로 새가 들어와 있다면. 들어와 나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퍼덕거린다면. 시간이 흘러 바닥에서 죽은 듯 있다면. 나는 안쓰러워요. 하지만 안쓰러워하는 것과 인간화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아닌 걸 인간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다만 안쓰러워하며 행동할 수는 있다고. 어느 날 나는 새를 통역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뻔하다가 흠칫 놀라서 도서관을 나섰습니다. 두 발로 일어나 나는 다만 하나의 인간이니 교정을 배회하며 미래를 계획했죠. 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군요. 미래는 절망적이군요. 이제 미래를 생각하는 건 터무니 없이 지겨워. 나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습니다. 안쓰러워하던 감정은 멀리 날아가버렸고 나는 하릴없이 불투명한 미래만 바라보는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게 화가 났어요. 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그렇게 교정을 벗어났습니다. 계속 걸어가면서 인간의 형상을 본뜬 것들과 어떤 형상이든 인간처럼 만들어진 것들을 주시하기도 했고 다짐으로 훗날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나는 내 눈을 피해 다녔어요. 나는 오늘도 내 인간의 하루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