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운 - 창문을 열어놓을 때 곳에 따라 비

사무엘럽 2020. 11. 23. 20:39

 

산책하는 사람에게:안태운 시집, 문학과지성사, 9788932037974, 안태운 저 감은 눈이 내 얼굴을:안태운 시집, 민음사

 

 

 녹음이 흐르나. 여름이 흐르려나. 묘지와 입술이 흐르나. 창문을 조금 열어놓은 사이 흐르는 것들. 사나흘이 흐르고 조각과 진창이 흐르고 창문을 조금 열어놓을 때 곳에 따라 비가 내리고 빗물이 흐르는 사이 너는 창문 앞에서 창문을 조금은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창문을 열어놓을 때 너는 조금은 나갈 수 있었고 다시 조금은 들어올 수 있었고 너는 망설이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 방이 흐르려나. 방이 흐르면 너는 놀라 밖으로 나갔다가 창문으로 숨으려나. 돌아볼 새 없이 방은 흐르고 사나흘이 흐르고 너는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은 상태로 창문 속에서 머물고 있었다. 극장이 흐르고 있었다. 생몰이 흐르고 있었다. 곳에 따라 촌락과 강변이 흐르고 있었다. 때에 따라 갈곳이 흐르고 있었다. 갈 곳을 잃고 있었다. 너는 있었나. 너는 없었나. 너는 눈이 없었다. 너는 흐를 때 눈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