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원 - 밤의 황량한 목록들
도끼 삶은 물을 마시고 전진하면
도처에서 쪼개진다
네모에서 세모로
실체와 속성으로
도끼로 내려찍는다
회상과 반향
도끼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 내는 소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도끼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 사용되는 수단의 물리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도끼는 바로 거기로 가 내려찍힌다
거기가 도달해야 할 유일무이한 목적지라는 듯
알루미늄과 잉크로 쪼개진다
물과 향기로
피와 살과 뼈로도 쪼개지고
개피 개고기 개뼉따구와는 도통 구분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아침부터 도끼날을 갈았으므로
이 도끼는 거침없을 것이고
잘하면 영혼과 육신으로도 쪼개질 것이다
참과 거짓으로 쪼개지는 말
거짓은 점차 의혹과 불안으로
하품과 서가와 냉장고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저 영혼을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도끼 삶은 물을 마당에 한 번 휙 뿌리고 나자
겨울이었다
빈 밤하늘
일개 연대 규모의 병력이 낮은 포복을 한 채 숨죽여 기다린다
그 위로 밤새 찬비 내리고
일개 연대 규모의 병력이 엎드린 채로 모두 얼어 죽어버렸다
비 오는 소리가 눈 쓰는 소리로 바뀌는 동안
자로 대고 칼로 그은 듯
흑백으로 쪼개져버 버렸구나
강원 산간에 한파주의보 내리고 나면
이건 그냥 한 덩이의 겨울
더 이상 쪼갤 것 없으면
도끼는 나무와 쇳덩어리로 쪼개져 버린다
나무는 오른쪽과 왼쪽으로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는 깃발
그러면 이 문장은 정지한 채
그곳에서 일제히 왼쪽과 오른쪽이 썩고
쇳덩어리는 영영 침묵 속으로
침묵과 썩음이 철커덩,
합체할 때까지
재정의하고
재정의하고
잘하면 나무와 황금으로도 쪼개질 것이다
나무는 비를 한껏 빨아들여 거대한 숲으로 번져 가고
쉬고 난 황금은 더욱 빛을 발하리
때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음으로써
무언가 완성되어 가는 중
이토록 황량한 육신의 목록들과
가까스로 내질러보는 가늘고 새된 고음이여
흐리고 때로 비
흐리고 때로 비
그리고 밤의 황량한 목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