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원 - 돌고래시

사무엘럽 2020. 11. 21. 19:49

 

밀크북_2 세상의 모든 최대화, One color | One Size@1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 황유원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4)[ 양장 ] 예언자, 민음사 일러스트 모비 딕 슬픔은 날개 달린 것:맥스 포터 장편소설, 문학동네

 

 

 국가대표 수영 선수가 헤엄쳐 가다 빠져 죽으려면

 아주

 아아아주 긴

 강이 필요하겠지

 그대에겐 그만큼 깊은 바다를

 범고래 대왕고래 향유고래

 무리를 지은 술고래 떼의 향방

 시 함량이 제로인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토하는 헛것

 고래고래 신나게 고함이나 칠 줄 알았지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분수 하나 만들어 낼 줄 모르고

 여기 돌고래시가 나가신다 다들 길을 비켜라

 읽고 있는 너도 비키고

 쓰고 있는 나도 비켜라

 숨을 안 쉬는 시와

 숨도 안 쉬는 시의 격차처럼

 다이빙 위스키 보드카

 나는 길바닥에 내 몸뚱아리만 한 바다를 그리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 본다

 공중에서 몇 번이고 몸을 뒤틀며

 삐익삑삑 삐삐삐삐

 일제히 뛰어들어

 일제히 빠져들어

 이건 시가 아니야 돌고래 수프 레시피지

 더 푸른 맛으로 미끄러지기 위한

 끼익삐익 뺘아아악

 볼품없는 형태로부터

 희미한 유선형에 이르기 위한

 볼륨은 최대한 0에 가깝게

 우리들의 말 사이가 좀 더 가까워지게 더욱 더 빠르게

 돌고래의새벽, 새벽의영혼, 영혼의돌고래

 다이빙 다이빙

 푸르르르르 휘이이이잉

 돌고돌고돌고도는돌고래쇼

 그 바그너적 돌진 속으로 나는

 밀어 넣는다

 돌고래를 몇 마리고 네 몸속으로

 숨도 안 쉬고 풀어놓는다

 돌고래들이 네 몸속에서 몇 번이고 몸을 뒤틀게 하고 

 다시 다이빙 다이빙

 하양과 파랑

 더 넓은 밖으로

 더 깊은 아래로

 엄청나게 멍청하고 명징한 속도로

 삐이삐이 뺙뺙뺙뺙

 돌진하는 운동에너지

 첨벙하는 위치에너지

 이제 나는 거의 하늘에 가까운 것이 되어 간다

 구름과 하늘이 대량으로 녹아 있는 밑바닥

 더 이상 흙이 묻지 않는 발바닥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 0mm

 돌고래의섹스, 섹스같은돌고래, 돌고래가되어가는섹스

 바다는 이제 어제의 바다가 아냐

 내면은 나날이 증발하고 잇는데 수족관의 물이 어제보다 증가한 이유

 우리 모두가 그저 관상용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 버려서

 그때 당신이 모두 흘리고 나온 눈물

 끝도 없고 끝없이 맑은

 당신은 당신 안으로 들어가 놀아 본다

 당신은 당신 안으로 어뢰를 발사해 본다

 우주와도 같은 것

 칼로 돌고래 고기를 썰어 먹으며

 돌고래 사체를 4분의 3박자에 억지로 쑤셔 넣고선

 끌고가 본다

 끌려

 들어가 본다

 더 넓은 아래로

 더 깊은 밖으로

 마침내 돌과 고래로 분해되어

 돌처럼 가라앉고

 고래처럼 퍼져나가는 단일한 외침

 삐익삑삑 후르르르르

 부디 그대의 사체가

 무병장수하고

 만수무강하기를

 다시 돌고래로 합쳐진 돌과 고래가

 일필휘지로 

 화선지 밖까지

 뻗어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