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원 -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돌아 버린 것들 틈바구니에 있느라 돌아 버린 건지 아니면 나도 원래 그들 중 하나여서 내가 너희들을 더욱 돌아 버리게 한 것들 중 하나였는지 한참을 헷갈리느라 정말이지 아주 돌아 버릴 지경인데......
하루는 몸속에 팽이 하나 돌려 놓고
그 팽이가 쓰러질 때까지 생각해 본다
자꾸만꿈만꾸자는 그 말,
그 속으로 들어가면
끝없는 나선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주문처럼
몸속에 팽이를 돌려 놓고
서서히 거기
빠져들어 본다
내 몸 안으로 나를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게 해 본다
인체의 신비를 모두 파헤치고 난 후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극도로 나른해질 때까지
모든 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됐을 땐
팽이는 이미 멈춰 있을 것이고
쓰러지고 나서도 생각해 본다
절벽 끝으로 몰린 머리가 새하얘질 때까지
팽이는 힘이 다하고 나면 제풀에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슬퍼하고 자시고 할 것도
그럴
겨를도 없이
그러나 저 보름달!
보름달이 뜨면
슬퍼하는 이 여럿
기뻐하는 이도 여럿
강강수월래를 추며 다 같이 돌아 버리는 밤이 여럿
달팽이 안에서 달팽이 밖으로
달이 팽이처럼 돌아간다
제자리에서 최고속도로
최면을 걸어
나는 달팽이라고
라르고, 라아르고오오오오
달팽이 속의 달이 뜨고
그 둥그런 탄창 같은 달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달팽이 속의 팽이처럼 돌아가기 시, 작, 하, 고,
그럼 나는 그걸 한 번 힘껏! 후려쳐 보는 것이다
더욱 빨라지는 강강수월래
달팽이 안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껍질을 박살 내고
달팽이의 술주정!
빈 술병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번개 문양으로 박살 난 술병 위를 지그재그로 기어 다니는,
집에서 쫓겨나 급한 김에 자기 집만을 들쳐 메고 나온
늙고! 무능한! 달팽이!
잊을 만하면 언제나
잊지 못할 일이 날 들이받고
밤새 나는 아주 멀리 가서
아침이면 아주 먼 거리가 되어 있곤 했다
그 위로 왕소금 같은 비가 내리고
지치면 오늘도 그냥 그 자리에서 곯아떨어지는 이가 여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