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원 - 새들의 선회 연구
일단 사진으로 찍으면 정지.
한곳으로 집중되는 힘들과 지금 막
펼쳐지려 하는 힘들이 만들어 내는
그대들의 온갖 선들도
그대로 정지.
그러나 찍기 전까지는 선회,
찍고 난 후에도 선회,
둥글고 둥글게 사과를 깎는 것처럼
공중의 껍질을 밀어내듯 부드러운 과도의 동작으로 선회
새들이 선회한 자리에선 사과 향기가 나고
더 큰 원을 그려 봐야 원은 끊어지지 않아
다만 바닥에 떨어지는 사과 껍질처럼 착지할 뿐
천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꼭 천 년 후에도 그럴 것처럼
깎아 놓은 사과의 속살 같은 하늘 남겨 두고서
그대로 착지.
그리고 그 자리에 다름 아닌
네가 있을 것.
내가 자른 사과를 부리로 쪼아 먹으며
부드러운 턱 운동과 함께
그 자리에서 가장 둥글게 울고 있는
네가 있을 것.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과가 산산조각 날 때
퍼지는 향기에는 상처 하나 없음을 수상히 여기다
그냥 거기 드러누워 언덕이 되어 버리는
언덕이 되어 그 향기 들이마시는
너는 있을 것.
흔적도 남지 않는 삶이 아니라
다 살아 낸 삶이 남아 있는 흔적과
이제 다 끝났다는 착각의 평화가 동시에 미끄러지는
넉넉하고 공평한 언덕,
평일이 모두 종말한 후
혼자 남겨진 주말의 완벽한 휴식 같고
졸음이 쏟아지는 베개 위로 흘러내리는
내용 없는 오후 같은 너의 언덕
거기 항상 내가 있을 것.
어떤 새가 또 태어나는 동안
어떤 새는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말해 주는 내가
너처럼 나도 그렇게 항상
네 옆에 있을 것.
비 그치고 나뭇가지에 줄줄이 매달린 물방울 열매들
그걸 따 먹는 새들의 목구멍이 순간 얼마나 맑고 시원해지는지!
옆에서 함께 숨죽이고 지켜보는 심정이 되어
찰칵, 그대로 정지했다가
함께. 다시 날아오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