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영주 - 주술사
사무엘럽
2020. 11. 20. 08:52
주검이 된 그는 목을 떨어뜨립니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그는 바싹 말라서 이제 퍼낼 것도 없네요
비가 오면 좋을까요 소년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의 울음이 이 길을 물들이면 좋을까요 태풍이 오려는 건지 소년의 심장을 악기처럼 불며 바람은 지나갑니다
그가 누구인지 잊지 말아야 하는데 이 살들은 왜 자꾸 흩어지는 거죠 발목이 드러날 땐 울지 못했는데 얼굴에 씌워진 가죽을 보니 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거죠 노래는 잣나무에서 오듯 흘려보내야 하는데 나무의 뒷면에는 쓸쓸하고 참혹한 고립이 숨어 있습니다
어떤 현자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비밀은 나뭇잎에 새겨져서 일생 동안 길 위에서 조용히, 천천히,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잠들 때마다 그의 어깨뼈에 닿는 부드러운
소년
소년은 무덤가에 주저앉아 눈을 뜨고도 잠이 들었습니다 제단에 바쳐진 염소의 눈 죽을지도 모르고 자기 앞에 떨어지는 흰 꽃을 주워 먹는 염소처럼
나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뒷면을 향해
주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