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트라클 - 꿈속의 제바스티안

사무엘럽 2021. 7. 6. 02:03

 

몽상과 착란, ITTA 꿈속의 제바스치안:게오르크 트라클 시선집, 울력 푸른 순간 검은 예감, 민음사 색의 제국:트라클 시의 색채미학, 서강대학교출판부

 

 

 1

 어머니는 아이를 하얀 달 속에 품고 있었다,

 호두나무 그늘, 오래된 딱총나무 그늘에서,

 아편의 즙에, 지빠귀에 울음에 취한 채로;

 그리고 가만히

 수염 난 얼굴 하나 그녀 위로 고개를 숙이니

 

 조용한 창가의 어둠 속이었다; 아버지들의

 오래된 살림살이는

 퇴락하고 있었다; 사랑, 그리고 가을날의 몽상.

 

 이토록 어두운 1년의 하루, 서글픈 어린 시절,

 소년이 서늘한 물들을, 은색 고기를 찾아 내려갔을 때,

 고요함, 그리고 어떤 표정;

 소년이 광분하는 흑마 앞에 돌 같은 몸을 내던졌을 때,

 회색의 밤에, 소년의 별이 그 주인을 찾아온 것;

 

 아니면 그가 어머니의 냉기 어린 손을 잡고

 저녁에 성 페터 교회의 묘지 위를 걸었을 때, 

 묘방의 어둠 속에 조용히 누워 있던 부드러운 시체가

 소년의 머리 위로 차가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 것.

 

 그러나 소년은 헐벗은 나뭇가지 위 작은 새,

 저녁의 11월에 길게 울리는 종소리,

 그가 황혼의 나선계단을 몽유하며 내려갈 때, 아버지의 침묵.

 

 2

 영혼의 평화. 외로운 겨울 저녁,

 오래된 호숫가에 선 양치기들의 어두운 형상들;

 밀짚으로 엮은 오두막 속의 아이; 오 얼마나 조용하게

 검은 신열 속으로 얼굴은 가라앉았는가.

 거룩한 밤이여.

 

 아니면 그가 아버지의 딱딱한 손을 잡고

 칼바리엔 언덕을 조용히 올랐을 때,

 노을에 물든 암석의 틈새로

 인간의 푸른 형상이 소년의 전설 속을 지나갈 때,

 심장 아래의 상처에서는 자주색 피가 배어 나왔다.

 오 얼마나 조용하게 어두운 영혼 속 십자가는 서 있었는지.

 

 사랑; 검은 구석들에서 눈이 녹아내렸을 때,

 푸른 공기 하나가 명랑하게도 늙은 딱총나무에 걸렸으니,

 호두나무 그림자가 이룬 천장 아래에서;

 소년 앞에는 그의 장밋빛 천사가 나타났던 것.

 

 기쁨; 서늘한 방들에서 저녁의 소나타가 울릴 때,

 갈색의 나무 대들보에서

 푸른 나방 한 마리가 은고치 밖으로 기어 나왔다.

 

 오 죽음의 가까움이여. 돌로 지은 성벽 안에서

 누런 머리 하나가 기운다, 아이는 침묵하고,

 그해 3월에 달은 몰락했던 것이니.

 

 3

 밤의 묘방, 그 천장 아래엔 장밋빛 수선화들

 그리고 별들의 은색 음성들이 들려왔으니,

 잠자는 자의 이마에서 어두운 광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진 것.

 

 오 푸른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조용한 걸음은

 잊힌 것을 되새기고, 녹색 나뭇가지 위 

 지빠귀의 울음은 낯선 것 하나를 몰락으로 이끌었던 것.

 

 아니면 그가 노인의 뼈만 남은 손을 잡고

 저녁에 도시의 함몰된 성벽 앞을 걸었을 때,

 노인은 검은 외투 안에 장밋빛 아이를 품었으니,

 호두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악의 유령이 나타났던 것.

 

 여름의 녹색 층계들을 되짚어보는 일. 오 얼마나 조용하게

 정원은 가을의 갈색 고요 속에서 몰락해갔는가,

 딱총나무의 향기와 우울이여,

 제바스티안의 그림자 안에서 천사의 은색 음성은 죽어버린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