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니 - 소년은 자라 소년이었던 소년이 된다
소년이라고 부르면 소년이 보인다. 어떤 소년에서 한 소년으로 움직인다. 세상 끝으로 떠도는. 아버지를 갖지 못한. 꽃도 피어나는. 불도 피워내는. 자신의 숨은 광기를 걱정하는. 웃어야 할 때 웃을 줄 모르고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했던. 시들어버린 얼굴 위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물러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발 물러나고 있었다. 비유를 잃어버린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음이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어딘가를 바란 적이 없는데도 언제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었다. 도처에 도사린 어제의 구름. 물보다 묽은 오늘의 묵음.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으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무언가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는 두 손으로. 내가 살았던 곳에는 내가 없었다. 내가 사랑했던 것에는 네가 없었다. 소년은 소년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쓴다. 벗어나길 바라는 순간 벗어나고 싶은 울타리도 하나 생긴다라고 쓴다. 울타리 밖에서부터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무감함으로 무장한 날들이 흘러들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착란의 찬란의 소리 없는 소용돌이 속이다. 톱니와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세계가 쉬지 않고 달려가는 그림자. 죽거나 늙거나 마지막은 마찬가지라면. 잊거나 믿거나 닿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면. 천상의 음악이 흘러도 좋을 것이다. 천사가 날개를 펼쳐도 좋을 것이다. 단단한 벽 너머로 막이 열려도 좋을 것이다. 손과 발로 박자를 맞추며 제대로 웃고 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깨 위로 가만히 내려앉는 다정한 손도 있을 것이다. 어둠 없이 잠드는 밤도 있을 것이다. 서러움 없이 말하는 입도 있을 것이다. 소년은 중심으로 중심으로 가고 있었다. 중심은 더 깊어가고 있었다. 기어이 미래로 돌아갈 겁니다. 기어이 그곳에 도착할 겁니다. 대화는 쳇바퀴처럼 맴돈다. 꽃은 꿈으로 피었다 진다. 꿈은 망각으로 소멸되며 완성된다. 깊어지다 어두워지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이 어두워지는 것은 깊어지는 것. 소년은 자라 소년이었던 소년이 된다. 소년이었던 소년의 오래된 미래가 된다. 어떤 소년에서 한 소년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