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 깜빡임

사무엘럽 2021. 6. 1. 22:42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이장욱 시집, 현대문학 혁명과 모더니즘:러시아의 시와 미학, 시간의흐름

 

 

 네가 없는 듯하다가 거기

 처음부터 있었다고 느끼지.

 보이다가 무수히

 보이지 않는

 

 너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 깜빡

 사라졌구나.

 내가 없는 곳에서 문득

 태어났구나.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건 방금 일어난 일.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중이지. 어둠이었다가

 순식간에 동이 트는 세계.

 잠깐 뒷모습을 놓쳤다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갑자기 시들어버린 공기를 이해하고

 죽은 이의 목소리를 듣는.

 

 밤이 오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기서 네가 살고 있구나.

 깜빡임도 없이.

 내 인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