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 - 소

사무엘럽 2021. 5. 25. 07:29

 

세 개 이상의 모형:김유림 시집, 문학과지성사 양방향:김유림 시집, 민음사

 

 

 소는 죽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소는 아니다. 그 소는 멀리서. 왔다. 배를 타고 왔을 수도 비행기를 타고 왔을 수도 있다. 소 한 마리 대서양 건너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다. 슬프지만 슬픈 운명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멀리 있기 때문에. 매매 울 것이다. 당신이 먹은 그 소도 아니고 당신이 먹을 그 소도 아니다. 송아지였던 소도 아니다. 아기 소랑 아기 소가 아닌 소. 아기 소인지 아기 소가 아닌 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소. 아아 저기야 향만엔 연기를 뿜으며 도착하는 선박들. 선박들 중 하나를 통해 그 소가 실려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소. 구별이 되지 않는 소랑 구별이 되는 소.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죽지는 않는 소와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죽는 소와 그냥 죽는 소와 그냥은 죽지 않고 죽어가는 소. 그러나 그 소는 그냥 죽었다. 당신은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 썬다. 운명의 나이프. 혀를 튀겨 먹으면 별미라던데...... 먼 나라의 목초지엔 목초지가 불타는 걸 지켜볼 수 있는 이웃 나라 절벽이 있고 절벽에게도 집이 있는데 저녁엔 연기를 뿜으며 지져지는 프라이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