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 - 영상들 2
해수는 오늘에 와서도 조류박물관에 갔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잊기는 잊었다.
잊기는 잊었다. 반복하는 것이다. 사이사이 잊기를 잊게 되면 무시할 수 없는 기억이
무시무시하게 반복한다. 기억이 반복하는 것이다. 기억이 반역하는 것이고. 해수는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올리브색 조끼와 꽃무늬 치마를 입은 채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을 수만 있다.
왜 흰머리수리 앞에 서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면 당연히 해수는 잊은 것이다. 잊기는 잊었는데 다시 잊어야 하는 것에 대해 골몰한 해수 앞에서
너는 잘 듣고 있다. 그건 아마
입술이 기억하는 영상과 영상이 기억하는 입술이
달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너는 생각합니다. 어린 해수의 입술에 흉터가 생기게 된 경위를 듣고 싶은데 해수는 자꾸 조류박물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확히는 박제된 조류들의 박물관인데 조류박물관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 같지만 확실하지 않다. 해수가
동생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활짝 웃으면 아무는 흉터가 기일게 부각되었다.
그것이, 입술이,
기억하는 섬광 같다
고 해수는 말합니다. 여기서 끝내고 싶지만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혀 동생을 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일이며, 언니답게 굴었던 일이며, 머리 한 통 정도는 컷었던 일이며(이제는 동생이 나보다 크다고 해수는 말합니다), 나는 창백하고 동생은 덜 창백하던 일이며(여전히 해수가 말합니다)
모르겠다, 흰머리수리의 박제된 눈이 노란빛이고 곧 날아갈 것 같아서, 모르겠다, 그것이 내 입술을 쪼갠 것 같았다.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오늘
너는 다른 버전을 듣고 해수가 다친 그날에서 한 뼘 멀어졌습니다:
이제 알았다 해수는 잊기는 잊었지만 다시 잊기도 잘하는 사람으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너를 속상하게도 만든다
너는
일어나
해수를 마주 보는 사람들을 마주 보며 출구는
여기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