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 박쥐들의 공원

사무엘럽 2021. 5. 23. 01:16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 있다. 모두가 각자의 고백을 하느라 철봉이 뜨겁게 달구어졌지. 공원은 깊은 내부 때문에 한없이 들썩거렸다. 비밀이 많아져야 도시는 번성하니까.

 

 서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동굴처럼 고인 물이 가득하다. 허리를 굽히고 그가 자신의 발을 만졌다. 도대체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수많은 활자가 뜨겁게 달구어지는 철봉에 발이 끼어 있었다.

 

 나는 철봉으로 기어올라 그의 발에 내 발을 포갰다. 세상의 끝에 동굴이 있다는 문장을 옮겨 적은 적이 있어. 그에게 주려던 수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창문이 없는 집에서 잠만 잤어. 영원히 잤어. 그것이 나의 고백이었지만 그 말들은 썩은 물 안으로 떨어졌지.

 

 우리가 눈을 감자 검은 날개가 조금씩 돋아났다.

 

 그렇다면 동굴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 우리는 스스로 자라서 너무 힘이 센 닭백숙을 뜯어 먹던 골방을 떠올렸다.

 

 이곳을 나가려고 하지 말고 이곳의 핵심으로 들어가자. 거꾸로 매달린 채 그는 살점을 찢어 내 입안에 넣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