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 영토

사무엘럽 2021. 5. 23. 01:13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너의 아름다운 공터. 자라다 만 나무가 있고, 죽지 못한 돌이 있지. 빛이 자기 자신을 그리다 말고 흩어지는 모서리.

 

 나는 놀러 간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곳에 맨발로 간다. 부서진 욕조 안에서 거미가 어둠을 잇고 있을 때. 너는 모서리에서 떨어지던 기다란 선 하나를 밟고 서 있지.

 

 선 바깥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네가 쓴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나는 맨발을 비볐지. 자기 자신을 그릴 줄 아는 것은 자연뿐 우리는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어서

 

 기울어진 것이 좋아. 너는 중얼거리며 세상에는 없는 각도로 휘어지고 있었지. 부드러운 그물이 살 속으로 파고들 때마다

 

 가장 어지럽고 가장 치명적인 이곳은 너의 아름다운 그릇. 휘어진 너는 어디에도 가닿지 않고 싶어서 텅 빈 욕조를 두드려보았지. 목마르고 배고픔이 가득해.

 

 우리는 자꾸만 만난다.

 

 서로를 만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깊어지고.

 

 모든 것이 빼곡한 나의 아름다운 욕조. 세상을 닮아야만 너에게 말을 걸 수 있나. 너는 이미 각도 바깥으로 사라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