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 미지
1. 약속이 아닌
애인은 이곳으로 올 수 없고 애인의 애인인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없다 교묘한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교묘한 약속이어도, 된다
2. 만남이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에 손을 대본다 차갑다 나는 온도가 있다 이 공간은 능동보다 피동은 아닐까 의심처럼
애인이 온다 가면을 쓰고 가면이 웃고 나의 가면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 악수는 짧다
3. 악수가 아닌
교묘를 걷는다 애인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왔다 "아직 공간이 되지 못했을 뿐이야"
나의 공간이 끄덕인다 안타깝게도 여기엔 손을 잡자는 적절한 언어가 없다
"너도 공간일까?" 내가 묻고
"아직" 애인이 답하고
언어 없이 손을 잡는다 놓지 않는다 아직 공간이 아닌 애인의 몸은 온기도 촉감도 기분도 없어서
"앉을까"
앉는다
4. 스테인리스가 아닌
애인이라는 미지칭 안에 응축된 불온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리듬이다 없는 건 아닐까 역시 미지일까 내가 잡은 애인의 손은 허위여서
스테인리스
스테인리스
나는 호명되지 못한 고백의 일부다 언어를 저지르고 나면 스테인리스는 돌이킬 수 없을까 깨끗하고 매끈한 나의 작위
5. 비가 아닌
"물이 쏟아지면 좋겠어" "비가 올 것 같진 않은데" "비?" "그래 비" "비가 뭐지?" "비는 물이지" "그러니까 물" "그러니까 그걸 이제 비라고 하자"
한다
기록, 열린 기록, 닫히지 않을 기록, 기록되지 않을 깨끗한 기록, 포옹을 하고자 햇는데
포옹을 한다
"차구나"
"스테인리스니까, 아직"
6. 몸이 아닌
공간과 공간에는 합집합이 있다 사랑은 둘씩도 가능하지만 넷이나 다섯도 충분하다 용인이 아니다 우리가 연 가능성이다
우리가 언어와 언어의 합집합으로 이루어진 고백이 될 때까지, 몸은 구축된다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진실과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사실
7. 이별이 아닌
여기는 증발 중이다 애인과 내가 동시에 증발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스테인리스에 손을 대본다 뜨겁다 애인은 온도가 없다
제로
차원, 작위될 너는
"미지?"
"미지"
8.이별
조용하고 깨끗한, 그리울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