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 사실들

사무엘럽 2021. 5. 12. 01:53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이영재 시집, 창비

 

 

 외야에 앉아 있다

 이 좌석엔 고유 번호가 있다

 티켓은 팔천원이다

 매표원을 부스 밖에서 만난 적이 없다

 모자를 썼다 손목시계는 없다

 모자를 썼다 손목시계는 없다

 저 새는 비둘기가 아니다

 껌은 씹지 않는다

 외야에 앉아 있다

 심판이 입는 옷이 마음에 든다

 오늘은 경기가 없다

 투수는 오늘 어깨가 좋지 않다

 외야에 앉아 있다

 공은 하나다

 글러브는 공이 아니다

 저 새는 비둘기다

 좌석은 모양이 같다

 저 새는 비둘기가 아니다

 선글라스를 꼈다 운동화를 신었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은 2번 타자가 아니다

 공은 글러브가 아니다

 배트는 공이 아니다

 감독은 오늘 무릎이 좋지 않다

 경기장은 비어 있다

 외야에 앉아 있다

 외야에 앉아 있지 않다

 외야에 앉아 있다

 외야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