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 관절의 힘

사무엘럽 2021. 5. 1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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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일 이어져 있나.

 앉았다가

 빈틈없이 일어서나.

 의상실 쇼윈도우 안에서 팔은 중간에 툭

 끊어졌다.

 공설운동장의 다리들은 굽었다가 펴졌다가

 트랙을 늘였다가 줄였다가

 

 두 개의 도로가 만나는 곳에

 나는 왜 누워 있나.

 당신이 나를 이해하는 순간

 뼈가 부러졌나.

 방금 하던 생각은 어디로 갔나.

 정면을 잃어버렸나.

 

 수평과 수직을 만든다면

 어디든 각도가 생길 것이다.

 의자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주저앉을 것이다.

 눈물이 그치자

 발가락부터 척추까지를 힘겹게 펴고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나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신선한 자세로.

 

 무릎을 굽혔다가 폈다가

 뼈와 뼈 사이의 세계를 물끄러미 어루만지다가

 다시 긴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