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 스위치

사무엘럽 2021. 5. 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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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부터 임의의 벽입니다. 아가리를 벌린 늑대였다가, 무섭게 낙하하는 솔개였다가

 흥미로운 이야기의 속도로

 차오르는 어둠의 힘으로

 당신을 향합니다.

 

 나는 순식간에 적을 만듭니다. 지금 당신은 사냥개입니까, 사냥감입니까.

 나의 표적입니까,

 미끼입니까.

 흔들리는 촛불과 함께 나는,

 

 드디어 이빨을 드러냅니다. 진기한 사건 속을 질주합니다. 감정의 파도 위를 활강합니다. 전세계처럼 확대되었다가

 쉼표처럼 줄어들었다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나는 단숨에 기승전결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이 점점 유일해집니다. 드디어 토끼의 긴 귀가 솔개의 부리가 되는 순간, 늑대의 아가리에서 검은 피가 튀는

 바로 그 순간,

 스위치를 올려라!

 

 우리는 멍하니 바라봅니다.

 늑대들이 무심한 왼손,

 오른손으로 변하는 것을.

 스르르 허공이 되는 새들을.

 당신과 내가 맹렬히 질주하던 세계에서

 우리는 문득

 환해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