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 전속력

사무엘럽 2021. 5. 9. 19:29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정오의 희망곡: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내 잠 속의 모래산:이장욱 시집, 민음사

 

 

 타조처럼 튼튼한 다리로

 공포를 표현하자.

 두 다리가 최대한 엇갈리는 순간

 누구나 전속력에 도달한다는 것,

 

 우연 속에서만 서로를 만나는

 아주 단순한 세계를 상상할 때가 있어요.

 그 세계에 참을 수 없는

 호감을 느끼는 때가.

 

 타조의 다리들은 지금

 서서히 예감하는 중.

 예감이란 연기와 같다가

 갑자기 튀어오르는 검은 표범과 같다가

 우리는 모두 요이,

 땅!

 

 드디어 타조는 화면 속을 질주하고

 발자국을 마구 흘리고

 소파에 파묻힌 채 우리는

 있는 힘껏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은 타조가 타조를 생각할 수 없는 세계,

 기린이 기린의 긴 목을,

 토끼가 토끼의 완성을,

 

 저는 거리를 걸어가다가 가위눌린 적이 있습니다.

 도망치는 타조도 가위에 눌릴까요?

 질주하는 표범은?

 우리는 전속력으로

 정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