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 의자

사무엘럽 2021. 5. 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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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가 만든 허공에서

 태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등의 구조, 두개골의 위치, 늘어뜨린 여름의 팔로부터

 겨울의 다리에 도달하는 곡선.

 이것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명령입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일어서다가

 목뼈가 무너지자

 순식간에 자신으로 돌아오는,

 

 의자의 계획을 이해한 뒤에도

 다시 무엇이 되어 의자에 앉는 것이 있습니다.

 의자는 의자의 지구력을 믿는 듯하지만

 한 마리의 새가 심장과 폐를 지나서 날아가는 아침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긴 겨울을 켜고

 서성거리는 이유를 만들고

 이윽고 다른 계절에 도착하는

 

 가득하면서도 텅 빈 그것을 의자 위에 쌓아놓기로 합니다. 구름조차 앉을 수 없도록. 막 변하려는 그것을.

 먼 후일로부터 지금 이 순간을 향해

 서서히 도착하는 것의 자리에.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그것.

 불현듯 일어서는 그것.

 척추의 생각,

 관절의 의문,

 목뼈의 결정,

 그 모두가 일제히

 그것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