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 그 복도
그 복도의 이름은 오후 4시의 희망,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 복도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중이다. 그 복도는 처음, 중간, 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 복도는 말이야...... 나는 그 복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한참 중얼거리다 보면 모르는 것들을 정신없이 핥게 돼.
그 복도에 처음 보는 그림자를 끌고 나타난 남자. 그의 뒷모습을 좇으며 눈동자를 얼음처럼 고정시키고 서 있으면 말이야...... 대체로 호기심은 저질이었고, 나는 예언자처럼 헛소리를 한다. 기다려봐, 그는 죽을 거야. 그는 죽일 거야. 그는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줄 거야. 인터넷이 매일같이 퍼 나르는 이야기라도 말이야...... 그것이 옆집에 누워 있는 시체 이야기라면, 우리의 오감은 싱싱하게 살아나서 어둠 속에 숨겨진 도끼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지. 그렇게 되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줄을 끊을 듯 맹렬하게 울리고 그땐 말이야...... 누가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나의 내부는 커다란 물방울처럼 붕괴된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말이야...... 머리 위에서 도끼 그림자가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그 밑에서, 각자, 자기 도끼를 숨기기 위해 밤마다 마음을 후벼 팠어. 어느덧 우리는 도끼를 어디에 숨겼는지 기억해내기도 어려워진다. 그땐 정말이지 모든 게 완벽하게 멀쩡해 보이는 것이다. 208호실 옆에 207호실이 있고, 그 옆에 206호실이 있고, 복도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늘에서 내려보낸 계단처럼 순종적인 질서가 잡혀 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뒷모습은 언제나 그 복도에 썩 잘 어울렸단 말이야...... 그 복도의 이름은 오후 4시의 희망,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뭔가를 보고 놀란 사람처럼 봉투를 떨어뜨리면 몇 알의 사과가 데구루루 굴러가기도 했다.
그 복도는 옆집과 옆방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모두 그 복도에서 하나의 그림자를 공용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착각을 사랑해서 그림자 속에서 눈에 띄는 표정을 꺼내는 일이 거의 없지. 그 복도의 이름은 오후 4시의 희망,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혼자 가는 먼 집. 한밤중 혹은 새벽 3시, 잠과 그림자를 모두 도둑맞은 사람은 오랫동안 무거웠던 희망을 살해하고 나온 듯이 가벼워져서 그 복도를 산책해. 절망의 기분도 없어지고 그때, 그 복도는 열어보면 빈 서랍 같은 것.
열어도 열어도 다 열리지 않는 기다란 서랍처럼 그 복도를 나는 천천히 걸어간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다니, 그 복도의 길이를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뒤를 돌아보면, 누군가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을 뿐. 어느 생의 법정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영원히 증언할 수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