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여성민 - 장미 여관
사무엘럽
2021. 4. 29. 18:51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인사를 하고 장미 여관에 가요
애인은 한 마리 새와 핏빛 노을 걔단은 파라핀처럼 녹아내리고 방금 사랑을 나눈 방에선 하얀 밀이 자라요 벽에는 귀를 댄 흔적들이 포개져 있죠
자다가 일어나 차가운 물을 마시고 발포와 발화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어요
따뜻한 바람이 부는 도시 발화하는 총구에서 새의 눈이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죠
눈이 생겼다는 건 조준되었다는 것 방들은 접혀 있어요
문을 열 때마다 애인들의 얼굴이 뒤바뀌죠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인사를 하고 우리 장미 여관에 가요 애인은 열 마리 푸른 나비와 핏빛 노을
애인의 그곳은 귀를 닮았는데요 밤이 오면 손을 포개고 그곳에 귀를 밀어넣어요 한 개 두 개 밀어넣어요 까마귀떼처럼 밀밭 위를 날아 검은 귀들이 사라져요
열 번의 밤이 오고 한 번의 아침
귀가 사라진 얼굴에서 장미가 돋아나요 영토 없는 꽃처럼
뒤집어져서, 벽에서, 검은 벽에서
꽃들이 발포해요
생의 마지막 문장은 언제나 꽃의 발포에 관한 것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이별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