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 - 한 번의 경배

사무엘럽 2021. 4. 28. 22:37

 

에로틱한 찰리:여성민 시집, 문학동네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여성민 소설, 민음사

 

 

 애인이 분홍 의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니 울지 말아요 따듯한 뼈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신성하고 불안했으므로 나는 나에게서 나왔지 삐걱거리는 판자에서 나왔지

 방은 의자만큼 작아지고 의자는 단 하나의 나무가 될 때

 

 뼈와 판자의 종교로 개종합니다

 쓸 만한 애인은 없지만

 

 분홍 뼈와 뜨거운 판자로 또하나의 의자를 만들 수 있다

 

 의자가 둘이면 애인도 둘 울지 말아요 못으로 귀를 뚫고 사랑한다고 말해요

 

 사랑은 의자보다 불안하고

 의자는 사랑보다 가능하며 신성하므로

 

 예배를 이해하거나 기도 시간에 다른 이와 혼약한 사람의 뼈를 만져보는 일은

 

 고요한 일

 

 슬프지 않으려고 의자를 쓰다듬는 슬픔

 그러니 제발 나를 위해 울어요

 

 바람 많은 숲으로 가지 말고 예배당이나 법원으로 가서 애인을 버려요

 판자를 버리고 더 깊숙한 종교로 개종할 수 있도록

 

 못이 들어가며 보게 되는 깊이로

 

 거울에 분홍 성기를 박고 손을 들어 경배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