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 - 아프리카입니다

사무엘럽 2021. 4. 28. 03:06

 

에로틱한 찰리:여성민 시집, 문학동네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여성민 소설, 민음사

 

 

 이곳은 아프리카입니다

 나는 아카시아 고봉밥으로 퍼먹고요

 아버지는 거실에 앉아 자꾸 토합니다

 아시아 아메리카 세계지도가 밀려나옵니다

 미끄러지면 아프리카입니다

 치워도 치워도 이 세계는 치울 수가 없습니다

 엎드려서 잠을 자보기로 합니다 생각으로 잡니다

 아버지 코가 쓱 길어지고 새까만 반죽이 쏟아져나옵니다

 아프리카입니다

 나도 쓱 코를 밀어넣고 싶어집니다

 아프리카니까 코끼리처럼 코를 밀어넣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살구나무가 먼저 살그머니 일어납니다

 아카시아가 아버지 눈을 쿡 찌릅니다

 꽃을 따먹으면 꿀이 나옵니다만

 에라, 모르겠습니다

 아카시아를 뽑고 아프리카를 심습니다

 바오밥나무처럼 뿌리를 지붕에 척 걸어두면

 내일은 밥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늘에 떠 있는 코코넛

 남은 아프리카로 집을 지어봅니다

 아프리카로 지은 집은 달고 시원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바삭바삭 움직여 밤엔 집이 넓어집니다

 아프리카는 풍성합니다

 집을 짓고도 반죽이 남습니다

 가나 초콜릿은 어디로 가나, 아프리카로 가나

 초콜릿도 만들어 먹습니다

 치카치카 이를 닦습니다 나보다 이가 하얀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하얀 것을 뽑아 던집니다

 아프리카입니다

 나는 내 아프리카를 보러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아프리카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아프니까 잘 자라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를 뽑고 아메리카를 심어야 할까 생각해봅니다

 아메리카는 잘 자랄 거라고 누가 잠꼬대를 합니다만

 이를 하나 지붕에 심어두고 내려옵니다

 달처럼 자라면 아프리카를 옮겨 심고

 지붕에 앉아 코코넛을 따먹으며

 계속 아프리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