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황인찬 - 빛은 어둠의 속도
사무엘럽
2021. 4. 21. 15:18
아빠들은
나를 학교로 보내고
나는 혼자 그네를 탄다
언제나 이런 장면들뿐이라 조금 지겹지만
나는 해야 하는 일들을 한다
개미들이 죽은 잠자리를 끌고 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본다거나
눈 뜨기 직전의 싹이 매달린 가지를 부러 꺾는다거나
아이들로 가득한 운동장 한가운데서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나는 배운 대로 잘하는 편이다
나는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나는 약속 시간을 지킨다
나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은 꼭 선행을 한다
내 옆자리 남자애는 내게 귓속말을 한다
어제 선생님이 자기 아빠를 불러
자기가 자폐증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노라고
나는 그 남자애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시키는 대로 잘하는 편이다
저녁의 교정은 크고 넓어서
누가 누굴 잡아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누군가 교실 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복도를 떠나간다
그러나 납치는 없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지 못해 교실에 가득하고
이 시의 화자로
아직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다소 부적절하다
아빠들은 빈손으로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