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 화면보호기로서의 자연

사무엘럽 2021. 4. 21. 02:21

 

[창비]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 시집), 창비 구관조 씻기기:황인찬 시집, 민음사 희지의 세계:황인찬 시집, 민음사

 

 

 푸른 하늘 은하수라는 말이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릴 적에 은하수라는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와 내가 주고받은 말

 

 나는 그에게 은하수를 직접 본 적이 있는지 물었고(무작위로 자연을 소환하는 윈도우 잠금화면 때문이었다)

 

 그는 갑자기 푸른 하늘인데 은하수가 어떻게 보이느냐 운운하며 푸른 하늘 은하수 얘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식당에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저 나무 멋지지 않아요?"

 "무슨 나무요?"

 "이따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얼굴 까만 남자애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자리에서는 고개를 돌려봐도 다 똑같은 나무뿐, 밥을 다 먹고 식당 밖으로 나가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화성으로 떠나 몇달째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면 같이 천왕에서 살자는 둥 자기 고향인 수성이 좋다는 둥 그런 이야기도 했지만

 

 그걸 다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 온다거나 달이 밝다거나 태양풍이 어떻다거나

 할 말이 없어서 하게 되는 이야기들뿐이니까

 

 혼자서 멍청하게 앉아 있으면 화면에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자연이 너무 예뻐서 그걸 갖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굳이 옛날 윈도우 배경화면(파란 하늘 아래 푸른 언덕이 그려진 그거)을 찾아 쓰는 타입의 사람이지만......

 

 아마 그는 토끼 한마리나 계수나무 한 나무에는 관심이 없겠지

 

 그에게 서쪽 나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다

 

 구름 없는 한낮의 하늘에는 하얀 반달이 떠 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고 싶어서

 식당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서로 전혀 다른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똑같은 나무들의 모습으로 늘어서 있었다

 

 사람을 막지 말라고, 호버보드에 탄 사람이 내게 말했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어두운 밤, 저고도 인공위성들이 빛나고 있다 예전에는 은하수를 눈으로도 볼 수 있고 성좌를 지도 삼아 움직일 수도 있었다나

 

 나는 이 시의 시점을 조금이라도 미래처럼 보이고 싶어서 약간 장난을 쳐본다 그러나 미래는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