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황인찬 - 조건과 반응
사무엘럽
2021. 4. 20. 08:26
"개는 너무 슬픈 동물이야"
옆 테이블의 남자가 말했어
너는 그냥 창밖을 보고 있었고
"자꾸 뭘 바라잖아, 사람 얼굴을 보면서......"
그때 우리는 호수공원 옆의 까페에 있었어 커다란 고무 오리를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지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게 너무 슬프다고......"
남자는 혼자 앉아 있고
너는 그냥 창밖의 오리를 보고 있어
아니면 오리를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개는 너무 슬픈 동물이야......"
남자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고,
나는 애써 그를 보지 않았지
울고 있는 어른을 보면
죄짓는 기분이 드니가
사람들은 그냥 오리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마주 잡고
"자꾸 뭘 바라게 된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사라졌어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개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니까
개가 바라는 것이란
맛있는 음식, 따뜻하고 안전한 집, 마음껏 뛰기와 힘껏 물어뜯기,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건네는 칭찬......
그런데 너는 지금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너를 불렀어
그러자 너는 슬픔과 다정함이
구분되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쓰다듬어주었고
만약 내가 사람이었다면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십육 미터의 거대한 오리를 보며
자꾸 귀엽다고 말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