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오르크 트라클 - 쇠락

 

몽상과 착란, ITTA 꿈속의 제바스치안:게오르크 트라클 시선집, 울력 푸른 순간 검은 예감, 민음사 색의 제국:트라클 시의 색채미학, 서강대학교출판부

 

 

 저녁이 되어, 종소리가 평화를 알릴 때,

 나는 새들의 놀라운 비행을 뒤쫓는다,

 경건한 순례자의 행렬처럼, 오래도록 무리를 이루었다가

 가을의 선명한 허공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그들.

 

 노을에 젖은 공원을 정처 없이 걸으며

 나는 새들이 가진 밝은 기민함을 꿈꿔보고

 문득 시간의 징표가 거의 움직이지 않음을 느낀다.

 그렇게 나는 구름을 넘어 새들의 여행을 따른다.

 

 이때 한줄기 바람이 나를 쇠락의 기분으로 뒤흔든다.

 지빠귀는 낙엽이 진 가지 위에서 한탄한다.

 녹슨 격자들 위에서는 붉은 포도송이가 흔들리고,

 

 그와 함께 창백한 아이들이 추는 죽음의 윤무가

 풍화로 무너져가는 어두운 우물가를 둘러싸고,

 바람 속에는 파란 과꽃이 서리를 맞아 고개를 숙인다.